괴물 사냥꾼, 괴물 외과의들과 참사의 기록

이번에는 위쳐의 이야기, 끔찍했던 빅토리아 시대 외과 수술, 수학적 재난, 기록의 미학과 삶을 살리는 음악에 관한 책들을 리뷰해본다.

위쳐: 운명의 검

저자: 안드레 샙코브스키 년도: 1993 평점: ★★★★✰

운명의 검을 읽은 직후 느낀 점은 넷플릭스 위쳐 시리즈를 드디어 이해하겠다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한 시즌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려고 한 나머지 플롯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캐릭터들의 발전이 성급했다. 스트리가, 시리의 탄생, 그리고 “마지막 소원”의 뒷이야기를 알고 나니 만족스럽다.

위쳐의 배경은 중세시대인 만큼 현대적 기준으로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인물들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지적 화자가 여성을 필요 이상으로 성적 대상화한다면, 그것이 게롤트의 환상인지 저자의 환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플롯과 캐릭터 발전을 미묘한 힌트를 통해 전달하여, 독자가 언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두가지 기억나는 부분은, 렌프리의 단검을 통해 그녀가 복수를 포기했다는 것과, 게롤트의 마지막 소원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은 것이다.

수술의 탄생

저자: 린지 피츠해리스 년도: 2017 평점: ★★★★★

수술의 탄생은 조세프 리스터가 발명한 현대 소독법 덕분에 외과 수술이 복불복에서 의과 과학으로 변모한 피가 낭자한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는 분야의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놀랐다.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들 덕분이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19세기 외과 수술은 정말 야만적이다. 예를 들면, 마취제의 발명은 감염 때문에 사망률을 높이기만 했다!

조세프 리스터는 파스퇴르, 나이팅게일, 존 스노우같은 인물들의 그늘에서 잊혀진 인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의 인생을 그린 책은 언제나 환영이다.

전기인만큼 이 책은 과학계에서 자주 누락되거나 무시되는 과학의 인간미를 다룬다. 예를 들면 런던 외과의들의 융통성 없는 전통 고집에 관해 읽으며 현대 학계에도 만연한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했다.

험블 파이: 세상에서 수학이 사라진다면

저자: 매트 파커 년도: 2020 평점: ★★✰✰✰

험블 파이는 대중을 위해 쓰여진 웃픈 수학 오류들을 모아둔 책이다. 수포자들을 위해 쓰여진 만큼 수학도나 공학도들은 실망이 많을 것이다. 책의 예시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알고 있는 공학 혹은 프로그래밍 실수들이었다.

결국 재난을 불러일으키는 수학 오류는 공학적 오류다. 결국 공학적 오류는 사람의 실수이고 말이다. 따라서 수학 오류에 관한 책도 스위스 치즈 모델에 관해 다룰 수 밖에 없다. 재난 방지에 관해서 뭐라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지루한 복습일것이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저자: 김신지 년도: 2021 평점: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일상, 우리가 자주 잊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습관에 관한 에세이다. 라이프로깅에 항상 관심이 있었던 만큼 무조건 구매했다.

일기에 관한 팁들이 특히나 유용하다. 하루 하루의 주제를 정하고 하루의 제목을 지으면 반복적인 요소를 배제하니 일기를 쓰기가 매우 재미있다. 주어진 주제에 관해 쓰는 작문 연습처럼 말이다.

월간 베스트 리스트로 특별한 순간들을 기억하는것과, 년간 베스트 리스트로 한 해를 기억하기 쉬운 목록으로 요약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고려해볼만한 다른 제안들로는 매일의 순간, 개인의 공간, 좋은 문구들, 멋진 이야기들, 영감거리,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일기 쓰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영상을 기록하기 등이 있다.

렉스: 한 서번트 이야기

저자: 캐슬린 루이스 년도: 2008 평점: ★★★★★

렉스는 자폐아 서번트의 어머니가 쓴 가슴아프지만 희망적인 회고록이다. 그녀의 사랑이 상상 불가한 상황을 이겨내는 것이 인상깊었다. 가장 강렬한 부분은 당연코 그녀의 노골적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장면들이었다.

주변에 장애우가 없는 나로서는 한번도 고민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 자체가 의미있다. 잠시동안이라도 남의 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저자가 아들의 장애에 관해 알았을 때, 심장에 못이 박힌, 현실을 부정하고픈 그 공황 상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없고 무신론자인데도 아들이 과학자들의 장난감이 될까봐 두려운 심정과 강렬한 신앙과 믿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회고록을 읽는 이유가 아닌가.

이메일 없는 세상

저자: 칼 뉴포트 년도: 2021 평점: ★★★✰✰

이메일 없는 세상은 이메일과 메신저로 돌아가는 업무 환경에 대한 신중한 비판이다. 짧고 유려하게 쓰여져 주말에 읽을만하다.

저자의 전작들에 비해 문제의 원인 분석과 제시된 대안들이 내 삶에 큰 영향이 없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솔류션들을 제공한다는게 주된 문제다. 이 책의 주된 논점은 IT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방법론들을 일반 지식 노동 환경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티케팅 시스템, 칸반, 스크럼, 애자일 등을 사무직에서 채용한다면 당연 업무 효율성이 증가할 것이다. 단지 컴공 전공자로선 이 아이디어들이 전혀 새롭지 않았을 뿐이다.

내 삶에 적용해볼만한 조언들로는 스케쥴링 소프트웨어 사용하기, 관리 일과 딥워크 하는 시간을 분리하기,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소프트웨어 사용하기가 있다. 이를 제외하면 내 삶과는 무관했다.

이 책은 학술적인 잡설을 많이 하는데, 이를 싫어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 같다.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는다면 학자들이나 흥미로워할만한 담론들이 지루하리라는게 충분히 이해가지만 나는 학술적인 잡설로만 이루어진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본론보다 저자의 옆으로 새는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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